강남터미널에서 출발한 내 인생의 전환점, 평택행 고속버스 [시리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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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원동 한신아파트를 떠나, 평택 어머니를 향해" [시리즈 20편]
🧳 "잠원동 한신아파트를 떠나, 평택 어머니를 향해" [시리즈 20편] 안녕하세요?직장인테라스새벽빛입니다. https://blog6906.tistory.com/151 🛎️ 강남터미널 건너편 "잠원동에서 시작된 세 번째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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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야기합니다.
(I'm writing a follow-up article)
미성년자였던 그 시절, 당시 모든 거래는 요즘과 달리 모든 것이 오프라인 세상이었다. 요즘처럼 휴대폰으로 송금하거나, 계좌이체 버튼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던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미성년자라서 통장조차 만들 수 없었던 나로서는 매달 받은 월급을 현금으로 차곡차곡 모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원동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며 석 달 동안 모은 돈을 주머니 깊숙이 챙겨 넣고, 드디어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묵직한 짐가방과 두툼한 지갑, 그리고 설렘 가득한 마음. 그날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기대에 부푼 청소년이었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1층에 롯데리아가 있었다. 식사는 하고 왔지만, 이상하게도 배가 고팠다. 햄버거를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새로 출시된 밀크쉐이크가 무척 궁금했었다. 하나 주문해 처음 마셔봤는데, 이건 뭐...
첫 모금 입안 가득 퍼지던 달콤하고 아이스크림 같은 차가운 감촉. "아, 이런 맛도 있구나." 어린 나이 고단했던 삶 속에서 잠깐이라도 느낄 수 있었던 작은 기쁨이었다.

요즘 빽다방에서 판매하는 밀크쉐이크를 주문해서 마셔봤는데, 이야~ 83년 롯데리아 바로 그 맛이었다.
오랜만에 당시 마셨던 달콤한 맛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백종원 씨가 대표로 있는 더본코리아가 요즘 문제가 많이 불거져 있다고 하지만, 원래 마시던 빽다방 아메리카노, 깔라만시주스, 밀크쉐이크는 바꾸지 못하겠더라...
그중에서도 밀크쉐이크는 입맛이 촌스러워 그런지 역시 단순하게 만들어야 그때 맛이 되살아나나 보다.^^
그리고 당시 나의 귀를 사로잡은 또 하나의 놀라운 경험 — 마이클 잭슨.
불멸의 히트곡 마이클잭슨 빌리진(Billie Jean)
https://youtu.be/pepA734Abh0?si=dgfJT1pz8Rq0xOrW
터미널 1층 라운지에 울려 퍼지던 음악은 바로 마이클 잭슨 '빌리 진(Billie Jean)'과 '비트 잇(Beat It)'이었다. 스피커를 통해 반복 재생되던 이 곡들은 당시 대한민국 전역에 마이클 잭슨 열풍을 불러일으킨 대표곡이었다.
'빌리 진'은 1983년 1월 2일에 발매되었고, '비트 잇'은 2월 14일에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되어 연속해서 전 세계 빌보드차트 1위였다.
대한민국의 라디오, 길거리 리어카 카세트 스피커, TV방송 어디에서든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지금으로 치면 요즘의 방탄소년단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시대를 지배한 아티스트였다.
불멸의 히트곡 마이클잭슨 비트 잇(Beat It)
https://youtu.be/USb2tN1Yq18?si=7gFAUlsGFQDBrrg3
특히 빌리진과 함께 히트 친 뒷걸음질 문워크 브레이크댄스는 나에게 있어 이후 5년 지난 1988년(쌍팔년도) 음악다방, 나이트클럽 DJ 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해 준 효자 댄스가 되어 버렸다.
아무튼...
그 음악이 흐르는 라운지에서 밀크쉐이크 마시며 평택행 고속버스를 기다리던 그 순간.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 출발 기로에서 느꼈던 설렌 당시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며, 나도 뭔가 멋진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고속버스가 출발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평택역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요즘도 교통 체증만 없다면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머니... 곧 찾으러 갑니다."

기억 속의 평택역은 광장 전체가 휑한 시멘트 바닥뿐이었다. 광장 중앙엔 물 안 나오는 분수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텅 빈 공간, 딱히 안내표지판도 없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많지 않았다.
마치 나의 공허한 마음처럼, 아무것도 없는 평택역 앞. 어딜 가야 할지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감'이었다.
그때, 국방색 반팔티를 입은 젊은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 어디 가?"
아마도 광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두리번거리던 내 모습을 안 보이는 곳에서 멀찍이 지켜봤을 것이다.
나는 경계심 없이 그를 바라봤다. 어쩌면 누군가와 말 한마디라도 나누고 싶었던 외로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어벙벙한 상태였던 나는, 그가 내게 다가온 것이 하나의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등장은, 내 삶에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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